2026. 1. 14. 12:20ㆍ부자에 대한 공부/성공한 부자들의 인사이트
크라수스 영상은 “크라수스는 어떤 사람인가?”보다 “그 엄청난 재산을 어떤 방식으로 벌었는가, 그 결과가 무엇이었는가”에 초점을 맞춘 설명이다.[1]
## 크라수스의 위상과 겉모습
- 크라수스는 카이사르·폼페이우스와 함께 공화정 말기 로마를 사실상 지배한 삼두정치의 한 축이자, 당대 최고 수준의 부자이자 정치인이었다.[1]
- 집정관 시절 자기 재산의 상당 부분을 헤라클레스 신전에 기부하고, 시민 전체에게 석 달간 먹고 살 돈을 나눠 주는 등 **자선**을 크게 벌였고, 집 문을 늘 열어두고 친구에게는 무이자로 돈을 빌려주는 등 대중 친화적 이미지를 관리했다.[1]
- 웅변·변론 능력도 뛰어나 사소하고 돈 안 되는 사건까지 맡으며 ‘사회적 의무를 다하는’ 정치인 이미지를 쌓았고, 스파르타쿠스의 노예 반란을 진압하는 군사적 업적까지 있어 겉으론 거의 완벽한 인물상으로 보였다.[1]
## 재산 규모와 성장
- 아버지가 죽으면서 젊은 나이에 오늘날 가치로 약 9조 원 정도에 해당하는 거액을 상속받았고, 약 34년 동안 이 재산을 23배 이상으로 불렸다.[1]
- 그의 재산은 약 1억 7천만 세스테르티우스 정도로 추정되는데, 이는 당시 로마의 1년 국가 예산에 근접하는 수준이었다.[1]
- 포브스 추산에 따르면 2008년 기준 환산액이 약 1,698억 달러(당시 한화 약 212조 원) 수준이고, 물가상승을 감안하면 오늘날에도 세계 상위 5위 안에 들 부자라는 평가가 가능하다고 소개한다.[1]
## 권력투쟁과 ‘몰수 자산 사냥’
- 크라수스의 아버지는 민중파 마리우스에게 살해당하고, 크라수스는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스페인으로 도망갔다가 마리우스의 정적 술라에게 붙어 그의 핵심 측근이 된다.[1]
- 술라가 내전에서 승리하고 로마를 장악한 뒤, 패배한 마리우스파 인사들에 대한 대대적인 숙청과 재산 몰수가 일어나는데, 크라수스는 여기 적극 가담해 이들의 토지·집·자산을 헐값에 쓸어 담는다.[1]
- 저항하는 사람에게는 병력을 동원해 ‘정리’했고, 심지어 명단이나 죄목을 조작했다가 들통 나 술라 측근들의 신뢰를 잃을 정도로 선을 넘기도 했다.[1]
## 부동산·노예·소방대를 활용한 돈벌이
- 이렇게 차지한 토지와 재산으로 농경지와 광산을 개발하고 '임대 사업'을 벌이며 **부동산**을 핵심 축으로 자산을 키웠다.[1]
- 노예를 단순 노동력이 아니라 ‘교육·훈련된 인력’으로 만들어, 숙련된 노예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임시로 빌려주는 방식으로 수익을 냈다.[1]
- 사설 소방대를 운영해 돈을 벌었다는 유명한 일화(불 난 집에 가서 헐값에 사겠다고 제안하고, 안 팔면 불을 안 꺼줬다는 이야기)가 전해지지만, 영상에서는 이런 극단적 형태는 증거가 없고, 다만 당시 부자들이 사설 소방대를 운영하던 관행 속에서 화재가 난 집과 주변 집을 싸게 매입한 것은 사실로 보인다고 설명한다.[1]
- 로마 시내는 집이 다닥다닥 붙어 화재가 잦았고, 사람들은 언제 또 불이 날지 두려워했기에 크라수스가 제시하는 낮은 매입가에도 집을 내놓았고, 그는 전문 노예들을 동원해 새 건물을 지어 임대 수익을 올렸다.[1]
- 불탄 집이 매각을 거부해도 결국 재건은 필요했기 때문에, '고리'의 '사채'를 빌려주며 이자 장사로도 재산을 불렸다.[1]
## 욕망이 드러나는 에피소드와 평판
- 신전의 여사제 미키니와 간통했다는 혐의로 재판에 회부되는데, 실제 목적은 그녀 자체가 아니라 로마 근교에 있는 그녀의 아름다운 저택이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1]
- 무죄 판결 후에도 저택을 포기하지 않고 집요하게 괴롭혀 끝내 저택을 사들이는데 성공해, 부동산을 위한 집착과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는 태도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일화로 묘사된다.[1]
- 이런 노골적인 부 축적 방식 때문에 로마 시민 다수는 크라수스를 탐욕스럽게 보고 냉담한 태도를 보였고, 그는 ‘탐욕의 화신’ 같은 오명을 얻는다.[1]
- 그러나 로마 공화정에서 막강한 정치·금권의 힘 덕분에, 이 부로 정치인을 후원하고 경쟁자를 제치며 자신의 지위를 더 공고히 할 수 있었고, 비난은 그의 금고를 흔들지 못하고 오히려 더 튼튼하게 만들었다는 식으로 영상은 평가한다.[1]
## 카이사르·폼페이우스와의 비교, 그리고 최후
- 삼두정치의 세 사람 중 카이사르는 정치, 폼페이우스는 군사에서 독보적인 성과를 남겨 ‘황제의 대명사’, ‘위대한 자’ 등 상징적인 명성을 얻었지만, 크라수스는 이런 상징적 평가에서는 한참 못 미쳤다.[1]
- 크라수스는 자신이 로마를 위해 봉사하고 자선을 베풀었음에도 명성이 두 사람보다 낮은 것에 내심 불만이었고, 이를 만회할 군사적 대성공을 갈망했다.[1]
- 카이사르의 갈리아 정복, 폼페이우스의 소아시아·예루살렘 정복, 해적 소탕보다 더 큰 전과를 얻기 위한 목표로 동방의 강국 파르티아 정벌을 선택한다.[1]
- 기원전 55년, 주변의 만류와 신중하라는 충고를 무시하고 약 4만 명의 대군을 이끌고 파르티아 원정을 강행하지만, 카르헤 전투에서 기병 약 1만에 포위당해 처참한 패배를 당한다.[1]
- 퇴각 과정에서 아들 파블루스가 전사하고, 크라수스 자신은 퇴각 조건을 협상하려다 그 자리에서 살해되어 생을 마감한다.[1]
- 이 전쟁으로 크라수스의 군대는 약 2만 명이 전사하고 1만 명이 포로가 되었으며, 겨우 5천~1만 명만 살아 돌아오는 대참사가 되었고, 이는 삼두체제의 균형이 붕괴되는 계기 중 하나로 작용한다는 뉘앙스로 정리된다.[1]
출처
[1] 크라수스는 돈을 어떻게 벌었을까?/개인 재산이 로마 1년 예산에 육박하는 엄청난 부자 https://www.youtube.com/watch?v=N4-4ubLGh4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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