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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버리] 영화 빅쇼트 실제 주인공의 생생한 금융위기 이야기

NASH INVESTMENT 2022. 2. 25. 1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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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가 무너지는 것을 보면서 저는 논리적인

행동을 했습니다.

저는 이로부터 수익을 추구했죠.

구체적으로 저는 신용부도 스왑(CDS)을 매수했습니다.

서브프라임 주거용 모기지 담보증권 후순위

트란쉐에 대한 것입니다.

제가 고객을 잃은 이유죠.

사실 그렇게하면서 저는 새로운 통찰력을 얻었습니다.

"어떻게 월스트리트가 움직이는지."

저는 여러 월 스트리트 회사들에게 전화를 돌렸죠.

부실 채권을 거래했을 때 인연이 있던 은행들입니다.

저는 그들에게 같이 거래하자고 설득했습니다.

처음에는 아무도 받아주지 않았습니다.

2005년 3월이었죠.

모든 과정은 꽤 복잡했습니다.

시장에 숏을 치기 위한 증권이 표준화되는 것은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제가 만약 한 딜러에게 CDS를 매수했다면

다른 딜러에게도 CDS를 쉽게 매수할 수 있어야 합니다.

말하자면 '단 한 번의 계약'에 대한 거래 당사자

리스크는 제가 용납할 수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05년 5월에 표준화된

계약은 점점 현실화되었습니다.

2005년 5월 19일에 저희는 트레이딩을 하기로 합의했죠.

"도이치 뱅크를 상대로 서브프라임 주택시장 숏을 치자."

곧바로 이 계약을 조금은 표준화시키는 작업을 했습니다.

2005년 6월 첫날에 첫 거래가 공식적으로 성사되었습니다.

최종적으로 저희는 9곳의 월가 딜러와 거래했습니다.

확실하게 말하면 첫 번째로 리먼과 베어스턴스는 피했습니다.

당연한 이유로요.

심지어 그 당시에도 골드만 삭스는 빠르게 모습을 드러냈죠.

그들은 매우 조심스러운 조직입니다.

제가 샀던 CDS의 가치는 올라갔습니다.

부동산 담보가치가 증발하고 트란쉐의 가치가 떨어졌었습니다.

골드만 삭스는 2007년 봄에 저희에게 다가와서

거래를 더 크게 해 보자고 제안했습니다.

그들은 더 크게 숏을 치기를 원했죠.

낮은 가격으로요.

골드만 삭스에 이익이 되니까요.

그것이 월 스트리트의 방식입니다.

2007년 6월 말에 신용 스프레드가 급증했습니다.

그러다가 한 번에 치솟았죠.

골드만이 저와 같은 포지션을 잡은 직후였습니다.

그런 뒤 AIG는 골드만의 행위에 비판했었죠.

믿기 힘들지만 나중에 보고하기를 신용파생상품

규모가 절정일 때 60T 달러였다고 합니다.

과장해서 말하면 그건 세계 총생산량보다 많잖아?

아마 대충 비슷할 것입니다.

누가 세계 총생산량이 얼마인지 알겠습니까?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요?

어떻게 세계 총생산량에 근접할 수 있을까요?

자산을 기초로 한 신용파생은 자산의 가치 그 자체보다

몇 백배 뻥튀기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모든 담보부 파생증권은 결국 본래 가치가 정해져 있습니다.

이것이 심판의 날에 대한 비밀의 법칙입니다.

결국 금융위기가 펼쳐지고 시장은 이미 너무 늦었다고

신호를 보냈습니다.

심지어 연준 의장 벤 버냉키와 재무부 장관 헨리 폴슨이

계속해서 이 상황을 과소평가했습니다.

저는 이렇게 생각했죠.

'뇌졸중 환자들.'

폴슨 장관이 현재에 와서 주장하기를 

"심지어 무엇이 일어날지 알았아도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설령 사실이라 해도 결국 그는 이런 식으로 말할 것입니다.

"저는 2006년 여름에 막 취임한 참이었다고요."

하지만 그는 골드만 삭스의 CEO의 출신이죠.

재무부 장관이 되고 그렇게 무능한 것은 아닌가 봅니다.

그는 '상상할 수 없는 짓'을 지휘했습니다.

AIG와 패니매이 프레디맥의 국유화입니다.

몇 년 전만 해도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죠.

'월 스트리트의 구제금융.'

그는 다름 아닌 무능한 도구일 뿐입니다.

다른 사람보다 더 나은 첫 시작을 가졌을 뿐이죠.

만약 진짜로 그가 그런 식으로 생각했다면 정부가

돌아가는 방식이 얼마나 어처구니없는지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사실 금융위기에 관한 책과 논문을 보면

모든 실패한 기관과 모든 관련된 정부기관에서도 

저보다 통찰력 있는 누군가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상부에는 한 명도 없었습니다.

우리의 CEO, 주지사, 대통령, 연준 의장은 이를 보지 못했고

국민을 위해 적절히 대비하지 못했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리더를 선택하는 방식에 대한

폐단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하지만 2008년에는 이런 식으로 결론이 나지 않았습니다.

아마 이렇게 말하겠죠.

"헤지펀드의 잘못이다!"

남은 반년 간 정부는 헤지펀드 매니저를 형사 소송했습니다.

"투기꾼과 악랄한 헤지펀드에 의한 세계적인 공격이었다."

국유화와 그들의 부채.

그들의 부채는 이제 정부에서 우리의 세금으로 돌보고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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