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니스웨거] 세계에서 돈이 가장 많은 가문이 형성되는 과정 | 월튼 패밀리

2022. 10. 27. 21:41부자에 대한 공부/투자 현인들의 인사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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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youtube.com/watch?v=Go1sXHZQIqU 

세계 매출 1위 기업은 월마트입니다.

월마트는 21세기 이후 한 번도 매출액으로

세계 2위 아래로 내려간 적이 없는 기업입니다.

현재 매출액은 무려 700조원에 가깝습니다.

만약 월마트를 하나의 국가라고 가정하면

전 세계 26위의 경제 규모를 가진 국가가 됩니다.

벨기에, 아르헨티나와 맞먹죠.

종업원수만 해도 230만 명이니 대구광역시 인구와 비슷합니다.

월마트는 미국 전역에 퍼져있는데 미국에서

쇼핑을 대표하는 장소이니 월마트에 따라 집값이 달라집니다.

월마트에서 책정하는 가경이 물가 경제 지표로 활용되기도 합니다.

주인인 월튼 가는 258조원을 보유하고 있어 중동의 가문을 제외하면

세계 1위의 부호 가문입니다.

하지만 이런 월마트도 처음부터 대기업은 아니었습니다.

샘 월튼은 1918년 오클라호마 주에서 태어났습니다.

형편이 넉넉치않아 잡지 판촉 일을 대학 졸업까지 신문 배달을 했습니다.

이후 그는 대학 졸업 후에 작은 상점에서 판매직 아르바이트를 했는데

판매 능력을 발휘하며 능력을 알게 됩니다.

군대 전역 후 샘 월튼은 장인에게 빌린 돈을 합쳐

아칸소 주의 인구 7천명인 소도시 뉴포트에 벤 프랭클린 잡화점을 개업합니다.

이때 나이는 26세였죠.

소위 프랜차이즈 상점이었습니다.

하지만 프랜차이즈의 개념은 현재처럼 마케팅부터 운영까지

일괄 지휘하는 것이 아니라 이름을 빌려주는 유명세였죠.

샘 월튼은 자신의 장기를 활용합니다.

전략은 간단했죠.

부지런히 상품 공급자를 만나 싼 가격에 팔 것을 약속한 거죠.

이윤을 조금 줄여도 많이 판매하면 총이익은 훨씬 늘어난다며

한 상품에 이윤을 많이 남기기보다 적게 남기면서 많이 파는

박리다매를 목표로 삼았습니다.

그의 영업 전략은 정확히 적중했고 개업 5년 만에 경쟁사들을

물리치고 최고 매출 소매상점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그의 성공으로 땅의 인기가 많아지자

땅 주인이 월튼과의 계약을 갱신해주지 않았습니다.

결국 그는 다른 지역으로 떠나게 되죠.

그의 당므 행선지는 벤톤빌이라는 인구 3천명의 시골 도시였습니다.

원래 벤 프랭클린 잡화점을 시작했던 도시 인구가 7천 명이었던

것에 비하면 정말 작은 마을이었죠.

이곳에 그는 Walton's Five and Dime이라는 상점을 열게 됩니다.

사실상 월마트의 전신이라고도 할 수 있는 이 상점은

현재는 월튼 박물관이 되어 운영되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붙임성 있는 월튼을 좋아했고 상점은

곧 벤톤빌의 상권을 장악하게 됩니다.

그는 안주하지 않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시도하고

가격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합니다.

한 가지 일화로 월튼은 훌라후프가 유명했던 당시

똑같은 호스를 싼 가격에 만드는 제조업자에게 공급받아

다락방에서 직접 훌라후프를 제작했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동네 아이들 대부분은 월튼의 손을 거친

훌라후프를 하나씩 가지게 되었는데요.

그는 가격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라면 직접 제조까지 했습니다.

이런 노력으로 얼마 지나지 않아 미국 최대의 잡화점 경영자가 도이ㅓㅆ죠.

그리고 1962년, 그의 나이 43세에 아칸소 주에

Always Low Price라는 슬로건을 걸고 월마트 1호점을 개점하게 됩니다.

어떤 물건이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싸게 팔아야 하고

언제든 마음에 들지 않으면 환불이 가능할 수 있어야 한다는

월튼의 강력한 의지로 동종업계에서 독보적인 성장세를 보여줍니다.

최저 가격과 최고 고객 만족을 주어야 한다는 생각이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입니다.

그렇게 몇 년 지나지 않아 월마트는 38개의 매장과 1,500명의

직원을 만들었고 한화 540억 원의 매출을 만들여 세계 최대

유통 업체를 향한 발돋움을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1호점을 개설한 지 10년도 채 되지 않은 1970년, 월마트는

뉴욕 증권 거래소에 상장됩니다.

이런 성공에도 샘 월튼은 항상 겸손했습니다.

그는 인터뷰에서

나는 1달러의 소중함을 깊이 인식하고 있다라며

월마트가 낭비하는 1달러는 고객의 주머니에서 나온 것이다.

고객을 위해 1달러를 절약할 때마다 경쟁에서 앞서 나아가게 된다.라는

명언을 남깁니다.

실제로 그는 살아생전 미국 최고 부호 1위에 올랐음에도

언제나 월마트 야구 모자에 비싸지 않은 픽업트럭을 몰고 다니며

한결같은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월마트 1호점에는 샘 월튼이 타고 다녔던 트럭이 전시되어있는데

운전석 시트도 가죽이 아닌 천으로 만들어지고

바닥 깔개는 구멍이 숭숭 나있다고 합니다.

말만이 행동으로 스스로 모범을 보였던 것이죠.

물론 싼 가격만이 월마트의 성공을 이끈 것은 아닙니다.

당시 대부분의 매장은 현재 패스트푸드점처럼

손님이 계산대 앞에 서서 뒤에 진열되어 있는 물건을 골라 샀죠.

지금으로서는 상상이 안 가지만요.

하지만 샘 월튼은 고객이 편리하게 하기 위해

직접 돌아다니며 고를 수 있도록 매장을 오픈하고

계산대를 한 곳에 몰아서 배치했습니다.

그 당시에는 과감한 시도였죠.

이런 시도는 점원이 찾을 물건을 고객이 직접 찾게 하면서

인건비도 줄이면서도 고객은 자신이 직접 물건을

찾아다니며 발견하는 쾌감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인간은 원래 오랫동안 사냥과 채집 생활을 해와서

우리의 뇌에는 사냥과 채집을 원하는 욕구가 있습니다.

매장을 돌아다니면서 싼 가격을 발견할 때마다

뇌는 먹잇감을 발견했다는 신호를 보이게 되고

그 결과 사람들은 생각지도 않았던 물건을 더 사게 됩니다.

그리고 이는 월마트 매출의 수직 상승효과로 이어집니다.

샘 월튼은 모든 매장을 1년에 1번씩은 돌아볼 정도로

고객과 직원의 목소리를 들었습니다.

그리고 아이디어로 제시해 니즈를 충족시켰습니다.

낚시 코너에서 일하던 직원이 낚싯바늘에 손가락을

찔려 반창고를 붙였다는 이야기를 듣고 낚시 도구 코너 옆에

반창고를 진열시키게 한 일은 샘 월튼이 직접 현장의

목소리에 귀 기울였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승승장구하던 월마트에 도전장이 날아옵니다.

아마존의 역습이었죠.

사람들이 점점 온라인으로 주문하고 받는 것에 익숙해지자

아마존은 급성장하게 도비니다.

한 시장 조사 업체에 따르면 현재 온라인 유통 마켓 셰어의

40%는 아마존이 차지하고 있고 월마트는 고작 7% 정도에 그치고 있습니다.

심지어 코로나로 오프라인에 중점을 두고 있는 월마트는

훨씬 더 큰 타격을 입을 것으로 예상되었습니다.

하지만 월마트는 쉽사리 물러나지 않았죠.

자신들이 가진 무기를 십분 활용하기로 했습니다.

바로 미국 전 지역에 깔려있는 오프라인 매장을 물류 창고 

거점으로 활용한 것입니다.

아무리 아마존의 물류 창고가 잘 되어있어도 60년간 미국 전역에

만여 개의 매장을 둔 월마트의 촘촘함을 따라잡을 수는 없었습니다.

월마트는 이런 매장을 활용해 신선 식품과 생필품을 더 빠르게

배송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합니다.

또 온라인으로 구매한 뒤 드라이브 스루로 픽업할 수 있는

환경을 구축해 많은 사람들에게 환영을 받았습니다.

미리 장을 봐놓고 퇴근 시간에 들러 픽업하면 바로 필요한

물건을 집으로 가져갈 수 있었으니까요.

이런 노력으로 월마트는 월마트 시대에 매출과 주가가 동시 상승하며

코로나 위기 기업에서 코로나 수혜 기업으로 재평가받게 됩니다.

월마트는 여기서 멈추지 않고 온라인 쇼핑몰 회사 등을

공격적으로 인수하며 온라인 시장에서도 아마존을 뛰어넘으려는 시도를 하고 있습니다.

거기다 원래 1등인 오프라인 매장의 경쟁력도 더욱 강화중이죠.

새로운 매장에서 월마트의 고객들은 의료 진료, 송급, 미용실, 모임을

할 수 있게 도입한 것입니다.

우리나라 이마트에 가면 다 있죠.

거기다 매장 주차장은 드라이브인 극장으로 변형시키며 오프라인에서만

할 수 있는 경험의 공간으로 활용 중입니다.

세계 매출 1위 공룡 기업인 만큼 변화가 쉽지 않았음에도

본질은 지키면서 변화하는 행보는 1등 자리를 지키는 원동력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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