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주의와 양극화는 동전의 양면과 같다

2021. 6. 25. 08:53인문학에 기반한 투자 철학/나의 인사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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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 체제에서는 양극화란 동전의 양면과 같다.

그 방증으로 모두가 잘 사는 것을 유토피아로 정한

'공산주의'와 '사회주의'가 존재한다.

하지만 이것은 모두가 '하향 평준화'로 가는 길이다.

공산주의로 균등하게 배분된 피자 한 조각보다

자본주의에서 제일 작은 조각이 훨씬 더 크다는 것은

역사적으로 입증된 사실이다.

그럼 자본주의와 양극화는 필연의 관계라는 것을 인정하고 시작하자.

빈익빈 부익부는 반드시 잉태되며, 그 기준은 모호하다.

멋진 신세계라는 소설에서 나오는 것처럼

빈자는 빈자 나름대로 만족을 하며 살 수 도 있고,

부자는 부자 나름대로 불만족하며 살 수도 있다.

이것을 정부가 개입해서 억지로 절대적 기준에

모두가 수렴하게 만들 필요도 없을뿐더러

그렇게 해서는 사회가 발전되지 않는다.

서울대가 '서울대'인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아무나 가지 않아서다.

판검사와 변호사, 성공한 사업가가 사회적 지위와

부를 누리는 것은 당연하다.

아무나 판검사와 변호사, 성공한 사업가가 된다면

누가 노력하겠으며 능력을 갈고닦겠는가?

그 능력이 사회적인 발전을 불러일으키고

결국 '낙수 효과'가 발현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경쟁' 구도에서 상대적으로 남들보다 우위를 점하기 위해

노력하였기 때문에 합당한 대우를 받는 것이다.

희생을 했기에 보상이 있는 것이다.

아무런 희생 없이 그저 유희를 즐긴 사람은

그저 그렇게 만족하며 사는 것이다.

부동산을 예로 '종합부동산세' 일명, 부자세를 증가시킨다고

과연 하류 서민들의 삶이 나아질 것인가?

전혀 없다. 정말 어리석은 발상이다.

세금은 전가되기 마련이다.

그들은 당신들의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치밀하고 똑똑하다.

종합부동산세를 걷어서 사회 복지 재원에 쓴다는 취지는 좋다.

하지만 자본주의 체제를 고수하는 이상,

그것은 반드시 서민의 위치에 있는

세입자에게 전가되며 삶은 더 팍팍해진다.

하지만 우매한 민중들은 부자들의 돈을 빼앗아 가는 것을 원하며,

그러한 정당에 표를 던지며 그것을 되풀이한다.

하지만 정작 그 세금을 내는 것은 '본인'이라는 것은

꿈에도 모른 채 그저 그렇게 살아간다.

얼마나 한심한 삶인가?

노예에서 벗어나는 첫 시작은

자신의 발에 묶인 족쇄를 인식하는데서 기인한다.

양극화라는 말이 꼭 내가 말단에

있을 필요를 의미하는 건 아니지 않은가?

최상단은 몰라도 말단에서

상단으로 갈 수 있는 기회가 제공된다는 말 아닌가?

왜 말단에 머무르려고 하며 상단에 있는 사람을

말단에 끌어내리기 위해 귀중한 시간을 소비하며,

그러한 정치인들에게 표를 던져주는가?

자본주의는 '경쟁'에서 이기는 '노력'을 하면

합당한 '기회'를 주는 체제인 것이다.

그럼 '노력'은 해보고 세상 탓을 해야 하지 않는가?

빈둥거리면서 사과가 떨어지기를 바라는가?

그러면 너무 비참하지 않는가?

성취감과 효능감을 느껴보지도 못하고

짐승처럼 먹고 싸고 잠만 자는 삶이란

얼마나 비참하고 슬프고 고독한가?

주변에 그런 사람들밖에 없어서 합리화가 되는가?

비루한 당신이 속해 있는 사회라면 벗어나야 하는 사회를 의미한다.

족쇄를 인식하자.

그것이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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