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다 소이치로] 혼다 창업자의 일대기

2018. 3. 24. 11:30부자에 대한 공부/성공한 부자들의 인사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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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일본에서  '경영의 신'이라 불리며

가장 존경받는 3대 기업가

가운데 파나소닉의 창업자 '마쓰시타 고노스케',

교세라의 창업자 '이나모리 가즈오'

이 두 회장에 비해 혼다의 창업자

'혼다 소이치로'는 상대적으로 덜 알려져 있는데,

왜 그가 일본 국민들로부터 존경을 받고 있는지를

'북스톤'에서 펴낸 <1분 혼다>라는

책의 내용 일부로 소개하겠습니다.

가족의 경영 참여를 배제한 경영자 실패에 관대한 혼다였지만,

유독 그가 일생토록 후회한 자신의 실패가 있다.

바로 회사 이름에 자신의 이름 '혼다'를 붙인 것이다.

그는 평소 '소니'처럼 사람 이름이 들어가지 않은 회사명을 부러워했다.

기업 경영만 놓고 보면 혼다는 놀라울 정도로 가족을 배제했다.

친동생은 자신과 함께 물러났고 아들은 아예 입사조차 시키지 않았다.

언론에서는 이러쿵저러쿵 말이 많았지만

혼다는 어떤 변명이나 해명도 하지 않았다.

설령 그가 아들을 불러 임원으로 일을 시켰다 해도,

일본 기업의 정서상 정면으로 반박하는 이는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 혼다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만일 아들이라는 이유만으로 불러와 후계자로 삼는다면,

수천 명이나 되는 아들들을 배신하는 행위가 아니겠는가."

혼다는 사내에 적합한 인물이 없으면

일본, 혹은 전 세계를 뒤져서라도 찾아오라고 했다.

모두가 고개를 끄덕이며 인정할 수 있는

사람이 CEO가 되어야 모든 직원들이 전력을 다해 노력할 것이고,

그래야 회사가 계속 번성할 수 있다는 것이다.

지역 주민에게 폐를 끼치지 않으려

노력한 경영자, 혼다는 회사를 창업할 때부터

'사람들에게 폐를 끼치는 회사는 만들지 않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그래서 공장을 지을 때에도 담을 세우는 대신 나무를 심고,

주위를 어둡게 만들지 않도록 시설 인근에 규정보다 많은 가로등을 설치했다.

스즈키 제작소를 건설할 때에는 늘 함께 짓던 생협조차 만들지 않았다.

직원들이 기존의 상점에서 물건을 사게 해 지역경제에 보탬이 되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그밖에 자체 개발한 장치를 설치해 공해 대책을 세우는 한편,

주민들의 민원에도 적극적으로 대응했다.

한 번은 엔진 테스트 소리가 시끄럽다는 민원이 들어온 적이 있었다.

그러나 테스트를 당장 그만둘 수는 없는 노릇,

대신 혼다는 소음 없이 테스트하는 방식을 고안하라고 지시했다.

아오야마에 있는 혼다 본사는 오피스 빌딩으로 특이하게

모든 층의 유리창 바깥에 널찍한 발코니가 있다.

지진이 났을 때 유리 파편이 행인들에게 떨어지지 않도록

각별히 신경 쓰라는 혼다의 지시에 따른 결과물이다.

작업복 차림으로 왕실 훈장을 받은 경영자

일반적으로 공장에서 입는 작업복은 파란색이나 남색, 회색 등 더러워져도

티가 잘 나지 않는 색을 쓰게 마련이다.

하지만 혼다의 생각은 달랐다.

일부러 새하얀 작업복을 입게 해 조금만 더러워져도 확연히 드러나게끔 만들었다.

기름때가 묻지 않은 깨끗한 공장, 청결한 작업환경을 만들고 싶다는

그의 의지가 작업복 한벌에도 드러난 것이다.

1952년 혼다는 수많은 발명을 인정받아 일본 황실에서 수여하는 훈장을 받게 되었다.

그 자리에 작업복 차림으로 참석한 일화는 혼다의 성격을 여실히 보여준다.

이에 대해 그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에게 작업복은 가장 화려한 예복과 마찬가지이다.

연미복이라도 차려 입고 가야 하는 자리라면 훈장 따위는 필요 없다!."

멋있게 물러난 경영자, 그리고 자신의 동상을 절대 세우지 못하게 한 경영자

1973년 정월 후지사와 다케오가 퇴직하겠다는 뜻을 전하자,

혼다 소이치로 또한 물러나겠다는 결정을 내렸다.

그 후에도 10년 동안 최고고문의 자리에 머물렀지만

불필요한 참견으로 경영에 끼어드는 일은 없었다.

지금까지도 회자되고 있는,

가장 멋지게 물러난 경영자가 아닐 수 없다.

혼다는 사장에서 물러난 후 가장 먼저 세계 곳곳에 있는

혼다 공장과 판매점을 방문했다.

그곳의 직원들에게 감사 인사를 하기 위해서였다.

그밖에 사회공헌과 해외 문화교류 등에도 열정을 쏟았다.

일본인 최초로 미국 자동차 명예의 전당에 입성하기도 했다.

혼다의 박물관과 동상을 세우자는 건의도 종종 나왔지만,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하며 거절했다.

"그저 혼다라는 사람이 있었다는 정도로 족하다.

우리가 사는 현재를 소중이 여기면 된다.

결국 현재는 과거가 쌓여서 만들어진 것이므로."

혼다가 세상을 떠난 것은 1991년 8월 5일.

그는 이러한 말을 남겼다.

"내 장례식에 오는 사람들은 모두 자가용을 타고 올 테고

 그렇게 되면 이 근처 교통이 마비되고 말 거야.

 자동차 회사의 경영자로서 그런 짓을 해서는 안 되지."

결국 그의 유언대로 회사장을 대신해 답례회가

본사와 지역 공장 등에서 열렸고,

6만 2,000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찾아와 혼다를 추모했다.

 

시민들의 안전과 불편함까지 생각하며

자신의 이익을 뒤로한 최고의 경영자 혼다 소이치로.

혼다 자동차에 관심이 많았지만,

그것이 사장의 이름이며 이렇게 희생정신이 강한

경영자가 있었다는 것을 오늘 알았습니다.

이러한 마인드를 가진 경영자 밑에서 일하는 부하직원들은

자발적으로 일을 열심히 하게 되어

회사가 크게 성장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경영자, 즉 리더로서의 필요한 자질을 모두 갖춘

보기 드문 그러한 리더인 것 같습니다.

위의 혼다 소이치로의 일대기를 보고 감명받는 점이 있다면

배워서 삶에 적용시켰으면 좋겠습니다!


이상 포스팅을 마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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