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삭 밀톡] 고려시대 서희 장군이 거란족을 물러친 방법

2022. 4. 9. 17:50인문학에 기반한 투자 철학/인문학 공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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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3년 거란이 고려를 침공하자 서희 장군은

협상을 추진해 오히려 '강동 6주'를 얻어내었습니다.

당시 고려는 고구려의 후신으로 북방정책을 추진하였죠.

그때 중국은 송, 거란, 여진이 대립했습니다.

군사력으로는 거란이 초 강대국이었습니다.

거란의 패권 욕망으로 송나라를 멸망시켜 천하통일을 하고자 했습니다.

거란은 송나라 공격에 앞서 배후 안정을 추구하고자

고려를 침공하였습니다.

그 당시 소손녕은 국경선을 넘어 서한을 보냈죠.

"내가 80만 대군을 이끌고 왔다!"

"항복해라."

그 당시 고려 조정에서는 어떻게 싸울지는 논하지 않고

투항론을 중점으로 할지론을 할 것이냐 논의하였습니다.

그때 서희 장군은

"한번 싸워본 후에 다시 논의해도 늦지 않스니다!"라고 했죠.

결국 서희 장군은 거란 진영으로 갔습니다.

운명을 건 담판에 기싸움이 오갔죠.

소손녕은 기싸움에 이기기 위해

"먼저 대국의 귀인에게 절을 올려 예의를 갖추어라!"라고 했습니다.

이에 서희는 

"무슨 말인가? 신하가 임금을 대할 때 뜰에서

절하는 것은 예법에 있는 일이나 양국의 대신이 대면하는

좌석에서 절하는 이는 없다!"라고 받아쳤습니다.

서희 장군의 강경 대응에 소손녕은 기가 눌려

대등한 협상 테이블에서 담판을 지었죠.

소손녕은 선제 공격으로'명분'을 내세웠습니다.

"고려는 신라 땅에서 일어났으니 고구려 땅을 내놓아라."

"거란은 고구려 땅에서 일어났으니 우리 것이다."

"송나라와만 우호관계를 유지하고 우린 거란과는 적대관계니

공격하러 왔다."

서희는 이에 맞서

"우리 고려는 고구려를 계승한 나라요, 그래서 나라 이름을

고려하고 정하고 서경을 국도로 정하였다."

땅의 경계로 말하자면 너희 땅이 우리 땅이라는 것이었습니다.

고려와 거란 사이에는 여진이 길을 가로막고 있었습니다.

송은 바다 건너 있지만 배로 갈 수 있으니 거란과는 우호 관계를

맺고 싶어도 여진이 방해해서 할 수가 없다.

해결책은 같이 여진을 공격해서 압록강 남쪽은 고려가 차지하고

압록강 북쪽은 거란이 차지하고 성과 보를 쌓아 길을 통할 수 있다면

국교를 맺을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소손녕은 자신의 본심을 꿰뚫은 제안에 흡족하였고 물러났습니다.

손자병법에서 나오는 '벌모'와 '벌교'가 여기서 나오죠.

벌모로는 소손녕의 의중을 읽고 마음을 변화시켰습니다.

벌교로는 여진을 공동의 적으로 만들고 동맹을 맺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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