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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주영] 일화와 명언

NASH INVESTMENT 2018. 3. 5. 1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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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2년 2월 미군으로부터 한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아이젠하워 미국 대통령께서 한국에 방문할 예정인데

부산 UN군 묘지에 잔디를 깔 수 있겠습니까?"

하지만 당시 UN군 묘지는 나무도 풀도 없는 황량한 곳이었고

당시는 한겨울이었다.

모두들 불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주영 회장은 물러서지 않았고 단 조건을 하나 걸었다.

'공사비 3배'

그는 트럭을 준비하고 낙동강으로 갔다.

그곳은 이제 막 푸른 새싹을 피우기 시작한 보리밭이였다.

그는 3배의 공사비로 밭의 주인에게 보리밭을 샀고 밭의 보리들을

 모두 묘지에다가 옮겨 심었다.

 마치 푸른 잔디밭인 것처럼.

그 결과 하루 한그루 없던 황량하기만 했던 곳이 푸른 보리밭으로 변했다.

모두가 불가능하다 생각했던 일을 해냈다.

그리고 그가 가지고 있던 하나의 꿈

바로

'세계 최고의 조선소 설립'

하지만 당시 돈, 기술, 경험, 명성 그 어떠한 것도 없었고

사람들은 미친 짓이라고 했다.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그는 자금을 만들기 위해 달랑

'모래사장 사진 한 장'과 '외국 조선소에서 빌린 유조선 설계도 한장'

을 들고 영국 바클리즈 은행 회장을 찾아갔다.

"조선소를 세울 계획인데, 돈 좀 빌려주십시오."

역시나 대답은 "No."

이때 그는 바짓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바로 500원짜리 지폐 한 장이었고 그리고 거기에 그려진 그림

'거북선'

"우리는 영국보다 300년 앞서 이미 철갑선을 만들었소.

그리고 400여 년 전 일본이 수백 척의  배를 몰고 쳐들어 온 것을

이 철갑 거북선으로 다 막아냈소.

다만 쇄국정책으로 산업화가 늦었을 뿐.

그 잠재력은 그대로 남아있소."

이 한마디를 통해 그는 차관(국제 간의 자금대차) 합의를 받아냈다.

그리고 모두들 불가능이라고 생각했던 '세계 최고의 조선소를 설립'하였다.

"무슨 일을 시작하든 된다는 확신 90%와

반드시 되게 할 수 있다는 자신감 10% 외에

안될 수도 있다는 불안은 단 1%도 갖지 않는다."

시련은 있으나 실패는 없다.

그가 입에 달고 다녔던 말

그리고 불가능하다고만 생각하는 이들에게 했던 말

바로 "이봐, 해보기나 했어?"

1975년 여름 어느 날, 박정희 대통령 이현대 건설의 정주영 회장을

청와대로 급히 불렀다.

"달러를 벌어들일 좋은 기회가 왔는데 일을 못하겠다는 작자들이 있습니다.

지금 당장 중동에 다녀오십시오.

만약 정 사장도 안 된다고 하면 나도 포기하지요."

정주영 회장이 물었다.

"무슨 얘기입니까?"

"1973년도에 석유파동으로 지금 중동국가들은 달러를

 주체하지 못하는데 그 돈으로 여러 가지

 사회 인프라를건설하고 싶은데 너무 더운 나라라

선뜻 일하러 가는 나라가 없는 모양입니다.

우리나라에 일할 의사를 타진해왔습니다.

관리들을 보냈더니, 2주 만에 돌아와서 하는 얘기가

너무 더워서 낮에는 일을 할 수 없고 건설공사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물이 없어

공사를 할 수 없는 나라라는 겁니다."

정주영 회장이 대답했습니다.

"그래요. 오늘 당장 떠나겠습니다."

정주영 회장은 5일 만에

청와대에 들어가 박정희 대통령을 만났다.

"지성이면 감천이라더니, 하늘이 우리는 돕는 것 같습니다"

"무슨 얘기요?"

"중동은 이 세상에서 건설공사 하기에 제일 좋은 지역입니다."

"뭐요?!"

"1년 12달 비가 오지 않으니 1년 내내 공사를 할 수 있고요."

"또 뭐요?"

"건설에 필요한 모래, 자갈이 현장에 있으니 자재 조달이 쉽고요."

"물은?"

"그거야 어디서 실어오면 되고요.

(물은 기름을 우리나라로 싣고 와서 비우고 갈 때 유조선에 물을 채워갔다.)

"50도나 되는 더위는?"

"천막을 치고 낮에는 자고 밤에 일하면 되고요."

박정희 대통령은 부저를 눌러 비서실장을 불렀다.

"현대 건설이 중동에 나가는 데 정부가 지원할 수 있는 것은 모두 도와줘!"

정주영 회장 말대로 한국 사람들은 낮에는 자고,

밤에는 횃불을 들고 일을 했고

세계가 놀랐다.

달러가 부족했던 그 시절,

30만 명의 일꾼들이 중동으로 몰려나갔고

보잉 747 특별기 편으로 수많은 달러를 싣고 왔다.

'기업은 행동이요, 실천이다' 몸소 보여준 것이다.

1915년 강원도 통천군 송전이 아산마을에서

6남 2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송전소학교를 졸업했으나, 가난 때문에

상급학교에 진학하지 못하고 아버지 농사를 도왔다.

정주영 회장은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해 여러 차례 가출을 반복하였고

실패를 하다 결국 가출에 성공하여 집에 있는 소 판돈을 가지고 고향을 떠났다.

고향을 떠나 쌀가게에 취직하여 열심히 일한 덕으로 주인은 정주영 회장에게

가게를 물려주었고 경일 상회를 시작하게 된다.

하지만 개업 후 1940년 중일전쟁으로 쌀이 배급제가 되며 가게를 정리하게 되고

전쟁이 끝난 후 아도서비스라는 수리공장을 인수하게 된다.

이 수리공장이 나중 '현대그룹'의 기초가 된다.

하지만 인수한 수리공장에서 화재가 나 좌절을 하게 된다.

그러나 정주영 회장은 포기하지 않고 돈을 다시 빌려 공장을 재건하고 이겨내게 된다.

이후 현재 자동차공업사와 현대 토건을 합병하여 현대건설을 설립하면서 자본을 축적하게 된다.

축적한 자본을 바탕으로 미국 포드자동차와 합작하여 현대자동차를 설립하였고

국내 최초 자체 모델인 '포니'를 생산함으로써 자동차 역사의 첫 장을 열었다.

이후 현대그룹 회장에 취임한 후  조선소 건설, 간척사업 등을 성공적으로

추진하여 대기업으로 성장시킨 후 1987년 경영에서 물러나게 된다.

정주영 회장은

'사업이 망해도 다시 일어설 수 있지만

인간은 한 번 신용을 잃으면  그것으로 끝이다'

라는 명언을 남겼다.

수많은 역경이 있었지만

끊임없이 도전하며 신용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끈기를 가지고 일을 하여  결국 사업을 이뤄냈다.

마지막으로 '16개의 명언'입니다.

1. 운이 없다고 생각하니까

 운이 나빠지는 것이다.

2. 길을 모르면 길을 찾고,

길이 없으면 길을 닦아야 된다.

3. 무슨 일이든 확신 90%와

 자신감 10%로 밀고 나가야 된다.

4. 사업은 망해도 괜찮다,

 다만 신용을 잃으면 그것으로 끝이다.

5. 나는 젊었을 때부터 새벽에 일어났다.

더 많이 일하기 위해.

6. 나는 그저 부유한 노동자에 불과하다.

7. 위대한 사회는 평등한 사회다.

노동자를 무시하면 안 된다.

8. 고정관념이 멍청이를 만든다.

9. 성패는 일하는 사람의 자세에 달렸다.

10. 아무라도 신념에 노력을 더하면

 뭐든지 해낼 수 있다.

11. 자신의 이름으로 일하면

책임 전가를 못한다.

12. 잘 먹고 잘 살려고 태어난 게 아니다.

좋은 일을 해야 된다.

13. 더 바쁠수록 더 일할수록 더  힘이

나는 것은 신이 내린 축복이다.

열심히 아끼고 모으면 큰 부자는

 몰라도 작은 부자는 될 수 있다.

15. 해보기는 했나?

16. 시련은 있어도 실패는 없다.

 

현대라는 기업이 있기까지는 무수히 많은 도전과 노력

 그리고 실패가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게 되었습니다.

로마도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았듯

모든 것에는 보이지 않는 피와 땀, 눈물이 녹아 있는 것 같습니다.

굴지의 대기업 '현대'가 있기 까지는 고 정주영 회장님의

노력과 능력이 있었음을 볼 수가 있었습니다.

특히나 사람의 신용에 대해 강조를 많이 하셨는데

인간관계의 중요성을 일찌감치 파악하셔서 사업에 잘 적용하신 것 같습니다.

저 또한  이러한 대기업이 만들어지는데도 노력이 필요한데

너무 안일하게 살았던 점을 반성하게 됩니다.

여러분들도 이 글을 읽고 도움이 많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이상 포스팅을 마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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