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에 기반한 투자 철학/인문학 공부

[김영록] 실패를 극복하는 도전 공식

NASH INVESTMENT 2018. 4. 13.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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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사진은 노르웨이 오슬로에 있는

바이킹 박물관입니다.

우리가 영화를 보면

바이킹 민족을 만나볼 수 있는데

척박한 영토에 가난한 민족들이죠.

그런데 다른 나라를 침범하고 급습하고

약탈한 물품으로 살아왔기 때문에

그래서 그들은 배를 만들 때

민첩하고 견고하게 만들었습니다.

그것은 그들의 생존기술이었고

살아가는 경쟁력이었습니다.

그들은 그것을 통해 숙련된 항해술을 터득하였고,

그로 인해 지중해를 건너 신대항을 개척하였습니다.

제가 여러분께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생존'이라는 키워드입니다.

저는 살면서 정말

한 30년의 광야가 있었습니다.

첫 번째 '16'입니다.

20살 되던 이전 16번의 이사를 하였습니다.

더 나아져서 이사를 간 것이 아니라

이사를 갈 때마다 정말 단칸방으로 갔었습니다.

그 16번의 이사를 하면서 유목민들의

생존기술을 터득할 것 같습니다.

살면서 이런 기술을 배워야 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굉장히 스파르타 같은 야생의 기술을 배웠습니다.

두 번째 '8'입니다.

신용등급이 8등급까지 내려가 보았습니다.

경제적으로 어려우신 분도 있을 수도 있겠지만

9등급부터 은행이 받아주지 않습니다.

저도 카드 돌려막기의 귀재였습니다.

많은 도전을 하다 보니까

도전은 도전으로 끝나버린다는 말이 있는데

청년들이 명심해서 들을 말입니다.

저는 창업을 두 번 정도 했고

지금은 거대한 꿈을 키우고 있습니다.

세 번째 '33'입니다.

제 인생의 터닝포인트가 바로 33살이었습니다.

저는 사실 투 사이클의

인생을 살았습니다.

10년은 건축설계사로 살았고,

10년은 현재 창업교육자로 살고 있습니다.

남들은 어떻게 그렇게 살 수 있느냐고 물어보지만

그런데 저는 33살 되던

해에 제가 10년 동안 닦아놓은

건축설계의 기반을 모두 버리고,

신림동 고시원으로 상경을 하였습니다.

사실 상경할 때 대학 입학을 하거나

직장을 구하고 오는 경우가

당연한 것인데 저는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지방에서는 의젓한 제 사무실이 있는

건축사무소 공동 대표자였고,

집도 있고 아이들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런 것들을 모두 뒤로 한 채

커리어를 모두 버리고

건축에서 교육으로 전향을 하게 되었고

그건 무모한 도전이었습니다.

사람들은 왜 그런 무모한 도전을 하느냐고 물어보았습니다.

저는 지금 청년들을 많이 가르치고 있는데

청년들이 이런 질문을 똑같이 합니다.

하지만 한 가지 알려드릴 사항은

도전을 할 때 자기 전공과 전혀 다른 전공을 도전하면

세상은 여러분들을 깊은 시련의

골짜리로 몰아넣어 버립니다.

유사업종으로 가셔야지

전혀 다른 업종으로 가면은

모든 것을 새로 시작하여야 합니다.

그래서 그 고시원, 찜질방, 반지하에서 2달을 살았습니다.

마포대교도 걸어가 보았습니다.

저는 건축사사무소 공동 CEO였기 때문에

자격증도 많았고 엔지니어여서

언제든지 취업이 가능하였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제가 고시원에 있으면서

호랑이는 배고프다고 잡초를 뜯어먹지 않는다는

말을 기억하였습니다.

칼을 뽑았기 때문에 어떻게 서든 해보자!

그리고 제가 꿈꾸는 학교를 만들어보자!

그 생각으로 뛰어들었습니다.

'꿈이 클수록 저항도 크다'

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렇게 신림동에 올라와서

다시 한 것은 공부였습니다.

대학원 공부를 하고 대학원에 들어가고

학교를 세워야겠다고 생각을 하였습니다.

요즘 문제가 많은 공교육을

대체할 수 있는 대안학교

아니면 대학을 하나 만들어보고자 하였습니다.

그렇게 만든 학교가

'융합인재 사관학교'였습니다.

사진에서 보시다시피 4명으로 시작하였고

지금은 400명이 넘는 학생들이 수료를 하였습니다.

이것은 1년 과정의 프로젝트였고

저 개인이 세운 학교였습니다.

학위를 주진 않지만 이것을 통해서

많은 학생들이 잘되는 것을 보았고

7년째 하고 있는 이유가 있습니다.

제게는 소명이 있었고 교육을 하는 사람은

절대로 투잡 쓰리잡을 하면 안 된다고 알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교육은 제너레이션 투 제너레이션,

즉, 다음 세대를 위해서 하는 것이어서

그 사명감으로 하여야 헌신이 있고

 진정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 학교를 만들어서

굉장히 의미 있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정말 스승의 날 때는 카네이션을 넘어 화환을 받습니다.

수백 통의 편지를 받고요.

그리고 이 전체의 과정은 무료이며,

재능 기부를 하였습니다.

교육자가 갖추어야 될 가장 우선은

바로 '진정성'이라고 생각합니다.

'자신이 완벽한 존재가 아니라는

사실을 솔직히 인정할 때 러난다'

저는 이 학교를 세우고 4년 만에

한양대 교수가 되었습니다.

한양대 교수가 되어해 보니,

저의 꿈은 학교를 세우는 것이지

교수는 과정에 불과했고 시스템을 알고 난 뒤에 사표를 써서

현재 르호봇에 와있습니다.

제가 정말 좋아하는 글이 있습니다.

'우리는 계속 시작하고 계속 도전하고

계속 개선하고 계속 창조한다.'

여기에서 시작, 도전,

개선, 창조가 있는데

이 4가지 키워드에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바로 움직임(Movement)입니다.

결국은 행동이고 도전입니다.

제가 33살 되던 해에

상경을 하지 않았더라면

아무것도 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여러분 평범한 사람이 어떻게 성공을 할까요?

굉장히 간단합니다.

두 배로 하면 됩니다.

저는 신림동 고시원부터 그 데스밸리를

네 배로 하였습니다.

출근 전 두 시간 퇴근 후 두 시간

이 네 시간의 사이드 프로젝트를

가동하는 사람들은 남들보다 두배로 빨라집니다.

그게 3년만 흘러도 인생이 바뀝니다.

생존하기 위해서는 오랜 시간 치밀하게 연습함으로써

한 번에 먹이를 사냥하듯 행동해야 합니다.

'치밀한 연습은 경쟁력을 높여주는 핵심역량입니다.

한 번에 하나씩 역량들을 모자이크처럼 조합해 나가는 동안

경쟁자를 앞질러 갑니다.'

이게 바로 축적의 힘입니다.

여러분들이 이 축적의 힘을 모으려면

정말 치밀한 연습이 필요합니다.

제가 현재 스타트업 지원센터에

기업가 센터장을 맡고 있고

한양대에서도 글로벌 기업가

센터에서 교수를 맡았습니다.

그 모든 일이 청년들과

시니어들을 도와주는

엑셀러레이터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제가 과감하게 스타트업 생태계에서

성공 공식을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은

위의 사진의 거대한 물줄기입니다.

예전에 벤처는 어드벤처로 하였기

때문에 이토록 잘되지는 못했습니다.

다 모험으로 끝나버렸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인프라가 잘 구축되어

있어서 물줄기를 타고 몸만 맡기면 됩니다.

제가 존경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삼성의 이병철 회장입니다.

2017년 2분기 실적,

영업이익이 타 거대한 기업들 합친 것보다

삼성이 더 높았습니다.

우리는 대기업을 많이 비판을 합니다.

하지만 삼성도 처음에는

삼성상회라는 스타트업이었고

현재 이러한 대기업이 될 수 있었던 것은

기업가 정신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바로 '운' '둔' '근'입니다.

운이 무엇입니까?

행운을 끌어올 수 있는 사람이고

둔은 우직하게, 근은 근면한 사람이 됩니다.

이 세 가지를 갖추지 않으면

절대 성공할 수 없다는 것이

이병철 회장의 말씀이고,

저 또한 이 좌우명으로

 인생을 살고 있습니다.

저는 한양대 교수가 되었고

최근에 저도 많은 기운들이 들어오고 있습니다.

인생에서 성공 공식은 기대하고

생각하고 얘기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행동하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장미를 꺾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아십니까?

바로 가시에 찔려야 합니다.

가시에 찔리면 매혹적인 장미,

여러분의 꿈을 얻을 수 있다고 하시며

강의를 마치셨습니다.

 

자신의 실패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진솔한 강의였습니다.

잘 나가는 커리어를 과감히 접어두고

새로운 도전을 향해 전진해나가는

모습이 정말 위대하다고 생각이 듭니다.

여러분들도 머릿속으로 생각하고 있는

도전을 지금 당장 실천하여

역사를 바꾸는 영향력 있는 인물로 거듭나기를 기원합니다!

 

이상 포스팅을 마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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