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3. 13. 10:30ㆍ인문학에 기반한 투자 철학/인문학 공부
사실 조선의 역사에 관심이 없었다.
일본 교수들의 말만 듣고 학술연구회에서
거북선을 처음 보았다.
저런 배가 400여 년 전에 있었단 말인가?!
나의 놀라움을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학술연구회의 이름은 '이순신'이었다.
일본 교수진의 도움으로 책 7권을
하루 만에 다 읽고 책을 놓은 뒤, 가느다란 한숨과 함께 어디선가
느껴지는 심장소리.
강의에서 학생들에게 서양과 일본에게 전쟁에서 패한
청나라를 구할 수 있는 위인 있다면
누구일까? 물었다.
'항우', '제갈공명', '손자', '관우'
나는 한참 동안이나 창문너머를 바라보다 말했다.
여러분들이 말한 영웅이 나타난다 해도
결과는 마찬가지이었을 거라고
그리고 학생들에게 거북선 사진을 보여주었다.
모두들 의아해하였다.
400여 년 전 조선과 일본의 전쟁 시
조선을 구한 '이순신'장군이야말로 중국을 구할
유일한 영웅이라고 나는 여러분께 말한다.
여기저기서 웅성웅성 소리가 들렸다.
조선 수군장수 '이순신'은 5천 명도 안 되는
군사와 50척도 안 되는 함대를 이끌고
40만 대군의 왜군과 1,300대의 일본 함대와
맞서 싸워 단 한 번의 패배도 없이 모두승리하여 조선을 구했었다.
당시 일본군은 100년의 전국시대를
거치면서 싸움의 고수들이었고 동아시아 최강의 전력을 갖추고 있었다.
그때 조선 수군은 물고기나 잡고 농사나 짓던 나약한 병사들이었으나,
단 1년 만에 훈련시켜 40만 대군과 1,300척을
거느린 일본군과 맞서 이길 수 있는 군대를 만들었기 때문에 그는 위대하다.
만일 이순신 장군이 일본 장수였다면 당시
명나라는 물론이고 태국과 베트남,
인도네시아까지 일본군에 점령되었을 것이다.
세계 어느 국가도 한 인물의 존재에 따라서,
이렇게 역사가 뒤바뀌는 경우는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여기 거북선을 보라,
누가 이 배에 400여 년 전에 만들어졌다고 믿겠는가?
여러분들은 눈을 떠야 한다.
나는 1시간 정도 더 '이순신'장군에 대한
삶과 죽음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주고 강의를 끝마칠 수 있었다.
강의가 끝났을 때 난 처음으로 전 학생들이 일어나며 기립 박수를 쳤다.
어떤 학생들은 눈물을 흘리기까지 내가 처음 '이순신'에 대해 자세히
알게 되었을 때 그 감정을 나의 제자들도 느끼고 있었던 것이다.
역사학자가 후세 사람들에게 해서는 안 되는 두 가지 부끄러움이 있다.
하나는, 히틀러가 200만 유대인을 죽인 것보다
그 역사를 감추며 숨기는 것이고,
또 하나는, 진정한 위인을 알아보지 못하고
찾지 못하는 것이다.
옛 문서를 보면 조선 수군의 병사들은 이순신과
친밀하게 교류하기도 하고 군법을 어기는 사람에게는
엄벌을 처했다고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제가 잘 되었고 전쟁에서도
그 능력이 통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는 초한지의 유방처럼 참모들의 의견을 존중하여
모든 것을 수렴하여 최적의 전략을 세웠다고 합니다.
나라에서는 이순신 장군에게 지원할 힘이 없어
스스로 농사를 지어 군자금을 마련했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일본과의 싸움에서는 불패의 전적을 가지고 있죠.
이순신 장군은 왜군에 첩자를 심어 놓아
영화 '명량'에서도 볼 수 있듯이
탐색전에 매우 능하였다고 합니다.
병력의 규모, 지휘관 등 정보 수집이 탁월했다고 합니다.
거북선을 만든 장본인 기술자 나대용의 존재 또한
매우 컸고, 백성들도 스스로가 이순신 장군을 위해
첩보를 얻어 오며 협조를 했다고 합니다.
난중일기에는
'흰 머리카락 여남은 개를 뽑았다,
흰머리가 나는 것은 괜찮지만 늙으신 어머니께 죄송스럽기 때문이다.'
라고 적혀있습니다.
어머니를 뵈러 가기 전에 쓴 글로 보이는데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 장군은 어머니를 군영 인근에 모셨습니다.
그 해 이순신 장군의 나이는 49세이고
어머니의 나이는 80세로 곧 쉰이 되는 이순신 장군의 나리로 봤을 때
흰머리가 나는 것은 당연하지만 뽑고 어머니를 뵈러 갔다고 합니다.
이처럼 이순신은 목숨이 오가는 열악한 환경 속에서 전쟁을 치르면서도
어머니에 대한 효가 우선이며 효를 굉장히 중요시했다고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명언입니다.
1. 집안이 나쁘다고 탓하지 마라.
나는 몰락한 가문에서 태어나
가난 때문에 외갓집에서 자라났다.
2. 머리가 나쁘다 말하지 마라.
나는 첫 시험에서 낙방하고
서른둘의 늦은 나이에 겨우 과거에 급제했다.
3. 좋은 직위가 아니라고 불평하지 말라.
나는 14년 동안 변방 오지의 말단
수비 장교로 돌았다.
4. 윗사람의 지시라 어쩔 수 없다고 말하지 말라.
나는 불의한 직속상관들과의
불화로 몇 차례나 파면과 불이익을 받았다.
5. 몸이 약하다고 고민하지 마라.
나는 평생 동안 고질적인
위장병과 전염병으로 고통받았다.
6.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다고 불평하지 말라.
나는 적군의 침입으로 나라가 위태로워진 후
마흔일곱에 제독이 되었다.
7. 조직의 지원이 없다고 실망하지 마라.
나는 스스로 논밭을 갈아 군자금을 만들었고
스물세 번 싸워 스물세 번 이겼다.
8. 윗사람이 알아주지 않는다고 불만 갖지 말라.
나는 끊임없는 임금의 오해와 의심으로
모든 공을 뺏긴 채 옥살이를 해야 했다.
9. 자본이 없다고 절망하지 말라.
나는 빈손으로 돌아온 전쟁터에서
열두 척의 낡은 배로 133척의 적을 막았다.
10. 옳지 못한 방법으로 가족을 사랑한다 말하지 말라.
나는 스무 살의 아들을 적의 칼날에 잃었고
또 다른 아들들과 함께 전쟁터로 나섰다.
11. 죽음이 두렵다고 말하지 말라.
나는 적들이 물러가는
마지막 전투에서 스스로 죽음을 맞이했다.
이처럼 역사를 거슬러도 우리에게 잊히지 않는 그 이름
'이순신'
이순신 장군이 있기에 현재 우리가 있고
우리나라가 있다고 생각을 합니다.
이상 포스팅을 마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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