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2. 14. 13:19ㆍ부자에 대한 공부/성공한 부자들의 인사이트
이 남자는 얼굴만 움직일 수 있는데도
단지 살기 위해서 100억을 벌었습니다.
원래 억대의 의료비를 내야 했었으며
게다가 정부가 한 달 월급을 80만 원으로
상한선을 정했죠.
넘게 되면 의료 보험을 못 받거든요.
그래서 그는 천재적인 계획을 생각해냈고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기업가들과 일하며
일반 사람들이라면 충분하게 죽음을 선택했을
역경들을 이겨냈습니다.
수십 번의 역경들요.
그의 이름은 존 모로우입니다.
존은 척주 근위축증을 가지고 태어났습니다.
그의 첫 번째 가장 큰 두려움은 요양원에 간다는 거죠.
시한 선고나 다름없었습니다.
같은 병을 가진 환자들은 항상 죽어나갔거든요.
대부분 6개월도 못 버텼죠.
비용도 연간 1억 5천~2억이었죠.
저소득층 의료보장제도에 의존했죠.
그 제도는 모든 비용을 부담해주었지만 그에 따른
조건으로 월급의 한도가 있었죠.
그 금액은 80만 원입니다.
대학 졸업 후 11개의 회사에서 일하자는 제안이 왔지만
모든 제안을 거절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일을 하면 의료비 2억을 자비 부담을 해야 하니까요.
그의 선택지는 두 가지.
저소득층 보험을 받기 위해
평생 80만 원만 벌면서 살든가 혹은 최소한 매년 3억 이상을
벌어서 자비부담을 하면서 살아가는 거 었죠.
다른 선택지는 없었습니다.
타고난 기업가에게 일을 못하게 한다면 살아야 할 이유를
없애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렇게 한동안 그는 탈출구를 찾지 못했죠.
죽는 것도 고려해보았습니다.
사람이 어떻게 한 푼도 못 벌다가 1년에 3억 넘는 돈을 벌겠습니까?
2006년 학교에서 돌아오는 중에 햄버거 집에서
일하는 한 남자가 일에 늦어서 과속하던 중에
그의 차를 들이받았습니다.
시속 140km의 속도로요.
그가 기억하는 것은 휠체어에 끼어있었고 아무것도
보이지 않더라는 것이죠.
시력을 잃은 줄 알았죠.
움직일 수가 없었습니다.
다리가 산산조각이 되었습니다.
병원에 가서 수술을 하는데 몸 상태와 폐렴 증세 때문에
마취가 불가능하였습니다.
그래서 깬 상태로 수술을 했죠.
잔혹한 경험이었죠.
그만하라고 울었지만 결국 받아들이고 했습니다.
원동력은 '저항력'입니다.
누군가 인생의 가장 밑바닥에 있다면 누군가가
자신을 억압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최악의 상황에서 느낄 수 있는 가장 강력한 감정은
'X까.'
라는 마인드죠.
그 누구도 여기서 그를 멈출 수 없습니다.
심지어 어떤 순간에는 의사와 간호사가 그의
어머니께 제안했습니다.
"그냥 보내줘야 해요, 죽는 게 편합니다."
하지만 그의 어머니는 포기하지 않았고 처칠의 명언 한 구절을
선물해주었습니다.
"절대, 절대, 절대 포기하지 마라."
그 명언은 인생의 한순간이 아닌 지금까지의 매일을 만들어가죠.
'내 상황은 싫지만 해야 하는 일이야.'
'다시 해보자.'
'지금 해야 할 일은 이거야.'
그렇게 수술 후 6개월간 앉아 재활하면서 할 수 있는
것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글을 썼죠.
개인 금융에 관한 글이죠.
독특한 관점으로 할 일을 찾은 거죠.
80만 원으로 죽지 못해 살아가다가요.
사람들은 그에게 말했습니다.
'그가 블로그를 시작하고 2년 후 몇 시간 만에 인기가 많아졌다고.'
하지만 어릴 때 친구들이 밖에서 놀 때
그가 할 수 있었던 것은 독서뿐이었습니다.
닥치는 대로 읽었죠.
그렇게 시작한 작가라는 그의 커리어는 유일무이하면서
세계 최고가 되었습니다.
단 2년 만에요.
수십 년간의 휠체어의 삶을 장점으로 이용한 겁니다.
그를 최고의 작가로 만들었다고 존은 이것을
카운터 펀치라고 부릅니다.
복싱 경기에서 많은 주먹이 오고 가지만 더 크고
강력한 주먹이 날아올수록 더 확실하고 큰 카운터 펀치의
기회가 생깁니다.
큰 주먹을 날림과 동시에 무방비 상태가 되니까요.
글쓰기가 그에게 그랬죠.
나쁜 일이 일어날 때마다 항상 느끼고 배운 것은
'최악의 상황에도 평등한 기회가 오고 그 기회로
모든 상황을 이겨낼 수 있다.'입니다.
그가 찾아야만 했던 기회였던 것이죠.
많은 장점을 가졌습니다.
남들에게 없는 그만의 장점이요.
하지만 80만 원 한도로 돈으로 받을 수가 없어서
돈이 아닌 다른 통화로 받으면 어떨까?를 생각했고
그렇게 그가 글을 쓰면서 수십억의 가치를 먼저 쌓고
나중에 한 번에 현금화하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래서 글을 써주는 대가로 거래를 했죠.
고객들에게 글을 써주는 대신 그들의 지인 중 한 명이
2천만 명의 트위터 팔로워를 가졌으면 그 지인을
개인적으로 소개해주고 전화 통화를 해달라 했죠.
돈 대신 말이죠.
정말 초반에는 작은 인플루언서로 시작해서 점점 커지더니
'팀 페리스'도 만났습니다.
그게 카운터 퍼치였던 거죠.
80만 원 이상 못 버는 펀지를 맞는 상황에서 돈이 아닌
다른 가치를 받을 기회를 찾은 겁니다.
돈은 아니지만 수백억의 가치를 지닌 그런 인프라를 구축한 거죠.
그러던 중 가장 큰 거래는 카피 블로그, 그 당시 가장 큰 사이트인데
브라이언 클러크가 운영했습니다.
그가 그에게 무료로 일해주는 대신 언젠가 그가 도움을 청할 때
무조건 도와달라고 제안했죠.
이 거래는 완전 도박이었습니다.
서류도 없고 약정도 없었기 때문이죠.
하지만 그에게 시초 수급을 벗어날 기회였습니다.
그렇게 그는 브라이언에게 무료로 일을 해주었습니다.
거의 4년 동안요.
수백 명의 작가들을 관리했죠.
돈도 안 받고요.
엄청나게 많은 양의 일을 했고 브라이언은 그 덕에
수백억을 벌었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사이트 운영을 배웠고 또 배운 다른 정보는
연간 3억 원의 의료비가 미국이라서 그렇다는 거였습니다.
다른 나라는 훨씬 저렴했죠.
멕시코에서 치료를 받는다면 바닷가 앞 콘도에서 지내면서
간병인을 두고도 연 6~8천만 원이었습니다.
그 와중에 최악의 일이 3가지가 겹쳤습니다.
모든 돈을 현금화할 때죠.
그의 어머니는 직장에서 해고당해셨고
간병인이 은퇴를 했죠.
멕시코에 갈 시간이 왔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납치도 빈번한 멕시코에 가서 빈털터리가 되면 어쩌지?
또한 국경을 넘을 때 멕시코는 경찰이 "차에 있는 거 다 압수야."
다 줘야 되는 상황이었죠.
즉, 치안이 너무 문제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다른 방법이 없었죠.
그렇게 국경을 건너기 전 걱정을 많이 했습니다.
그럴 때마다 그는 상상했습니다.
내가 도전 안 하고 요양원에서 죽으면 어떻까?
물론 좋은 방법은 아니지만 그 의미 없는 죽음의 두려움을 느끼면
그 당시 그가 겪어 나가는 일이 훨씬 덜 두렵게 느껴졌죠.
말 그대로 큰 두려움을 이용해서 작은 두려움을 이긴 거죠.
도전하지 않을 경우가 더 두려운 상황이라서요.
보통 사람들은 안전을 추구하겠지만 그는 아녔습니다.
그 무엇도 상관없었죠.
적어도 도전하다가 죽는다면 말이죠.
그렇게 국경을 넘는데 다행히 안전하게 도착했습니다.
그다음 날 그는 브라이언에게 전화를 했고 도움을 줄 차례라고
말했죠.
그의 인생 처음으로 시작하는 에이전시를 만들겠다고 했고
사업을 홍보해달라고 했습니다.
3천만 명이 사용하는 그의 사이트에 모든 사용자에게 말이죠.
바로 답장이 왔습니다.
"그렇게 해줄게."
그다음 날 바로 300~500명의 고객에게서 연락이 왔고
그렇게 월급 80만 원에서 시간당 백만 원을 버는 사업가가 되었죠.
개인적인 수입으로는 적어도 100억 정도를 총 벌었죠.
사업으로 벌어들인 가치와 총자산은 1,000억 정도죠.
그리고 다시 요양원에서 죽을 확률은 절대 불가능이 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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