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 소로스의 1992년 파운드화 대규모 공매도에 영란은행이 실패한 결정적인 이유
2025. 11. 5. 15:04ㆍ부자에 대한 공부/투자 현인들의 인사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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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소로스가 1992년 파운드화(영국 화폐)를 대규모로 공매도(매도)하여 영란은행(Bank of England)을 굴복시킨 사건(검은 수요일)에서, 영란은행이 무제한의 발권력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실패한 것은 다음의 세 가지 치명적인 제약 때문입니다.
중앙은행은 자국 통화를 무한정 찍어낼 수는 있지만, 국제 외환시장에서 외국 통화와 교환하는 데는 한계가 있습니다.
🛑 영란은행이 실패한 결정적인 이유
1. 💶 ERM(유럽 환율 메커니즘, 유러피언 익스체인지 레이드 메카니즘) 가입 의무
당시 영국은 ERM에 가입되어 있었습니다. ERM은 파운드화의 가치를 독일 마르크화에 대해 특정 변동 폭(±6%) 내에서 유지해야 할 의무를 부과했습니다.
- 환율 방어 의무: 파운드화 가치가 하한선 아래로 떨어지면, 영란은행은 이를 막기 위해 시장에 개입하여 파운드화를 매입하고 외국 통화(마르크화/달러)를 대량으로 팔아야 했습니다.
- 외환보유액의 한계: 파운드화를 매입하려면 **외화보유액(달러, 마르크 등)**이 필요합니다. 아무리 파운드화를 찍어내도, 소로스를 비롯한 투기 세력이 쏟아내는 수백억 달러 규모의 파운드 매도 물량에 맞설 만큼 무한한 외화보유액을 가지고 있지는 않았습니다. 영란은행의 외환보유액은 투기 세력의 공세에 비하면 유한했습니다.
2. 📈 금리 인상의 정치적/경제적 한계
환율을 방어하는 또 다른 방법은 기준 금리를 대폭 인상하여 파운드화에 대한 투자를 매력적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영란은행은 실제로 하루에 두 번 금리를 인상했습니다.
- 국내 경기 침체: 1992년 당시 영국 경제는 이미 침체 상태였습니다. 금리를 급격히 올리는 것은 기업 투자와 가계 대출(특히 주택담보대출) 비용을 폭증시켜 경기 침체를 가속화하고 대규모 실업을 초래합니다.
- 정치적 저항: 특히 주택담보대출을 받은 서민들의 이자 부담이 급증하면서 국민들의 엄청난 정치적 저항에 직면하게 되었습니다. 소로스는 영국의 노동자, 서민 파워가 강하다는 점을 간파하고, 정부가 국내 정치적 압력 때문에 금리 인상을 무한정 밀어붙일 수 없으리라 확신했습니다.
3. ⚖️ 시장의 '왜곡'과 근본적인 경제 펀더멘털
소로스의 공격은 영국의 파운드화가 ERM 체제에서 근본적으로 고평가되어 있다는 확신에서 비롯되었습니다.
- 불일치: 독일은 통일 후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고금리 정책을 폈지만, 영국 경제는 금리를 올릴 여력이 없었습니다.
- 재귀성(Reflexivity): 소로스는 시장이 정부의 의지와는 달리 파운드화 약세를 반영해야 한다고 봤습니다. 그가 대규모 공매도 포지션을 취하고 공개적으로 파운드화 폭락을 주장하자, 다른 헤지펀드와 투자자들도 동조하며 대규모 투매(공매도)의 흐름이 형성되었습니다. 중앙은행이 아무리 돈을 찍어내도, 모든 시장 참여자의 심리가 파운드화 하락에 베팅하기 시작하면 이를 막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결론적으로, 영란은행은 무제한의 자국 통화(파운드) 발권력은 있었지만, ERM 의무 이행에 필요한 유한한 외화보유액과 금리 인상에 따른 심각한 국내 경제적/정치적 비용이라는 딜레마에 갇혀 결국 투기 세력에 백기를 들고 ERM에서 탈퇴하게 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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