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에 기반한 투자 철학/인문학 공부

[이혁기] 미국 화장실 청소부에서 글로벌 스타트업 대표로

NASH INVESTMENT 2018. 2. 25. 1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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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살의 한 소녀가 미 항공우주국 나사에

편지를 보냈다고 합니다.

그 편지의 내용은

'우주여행사가 되고 싶은데

어떻게 하면 될까요?'였고

그의 대한 나사의 대답은

'미안한데 너는 여자이기에 안 돼'였다고 합니다.

소녀는 실의에 빠졌고

시간이 흘러 여대에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어느 한 정당에서 일을 하게 되었는데

'너는 인턴인데 허드레 일만 해'라고

하였다고 합니다.

'왜'냐고 묻자

'너는 여자이니까'라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이 여성은 이런 부당함을 극복하기 위해

법률 대학원에 들어가

뉴욕에서 로펌 일거리를 찾는 중이었지만

일할 자리가 없었습니다.

왜냐?

여자이기 때문에

그러던 어느 날 지인의 소개로 미국 알칸소라는 지방에

 시간강사 자리를 얻게 되었고 거기서 만나게 된 친구를

미국의 대통령으로 만들게 됩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미국의 대통령 다음으로 가장 높은 자리인

국무부 장관에 오르게 됩니다.

바로 '힐러리 클링턴'

 대한 이야기라고 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힐러리가 

처음부터 정치인의 꿈을

꾸어왔다고 생각할 것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앞에서 언급을 했다시피

힐러리의 어릴 적 꿈은 누구나 꿀 수 있는

우주비행사였던 것입니다.

우리는 여자이기에 어느 출신이기에

명문대를 나오기 않았기에

많은 차별을 받습니다.

힐러리가 살았던 60년대

70년대, 80년대 현재까지

똑같이 차별을 받고 있다고 합니다.

이혁기 님은

18살에 시급 1,850원을 주는

 베스킨(아이스크림 가게)에서 일을 했다고 합니다.

제도권 교육 안에서 십여 년 동안

영어 공부를 하였지만

일을 하면서 할 수 있었던 말은

고작 두 가지였다고 합니다.

돈을 얼마 받았을 때

'몇 원' 그리고 'here or to go?'

(여기서 드시고 가세요? 가져가세요?)

수능 외국어 영역을 본다고 하면

토익이 400점 넘는다고 하는데

이기혁 님은 고작 385점이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아 이래선 안 되겠다!'라고 느낀 뒤

취업공고를 보는데

안산에 외국계 기업이 눈에 들어왔고

거기서 일을 시작했다고 합니다.

거기서 하는 일은 아침 9시에 나와 저녁 6시까지

기판에 나사를 조이는 일이었는데

기판이 너무 섬세해서

전동드릴을 쓸 수가 없어

일일이 손으로 하는 수작업이었다고 합니다.

그때 영어를 할 수 있는 시간은

오로지 점심시간이었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그 회사의 대표는

독일인이었고 밥 먹을 때가

유일한 대화의 기회였기 때문이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밥을 먹지 던 어떤 얘기를

나눌지 생각을 하고 막상 식사를 시작하고

"how are you?"라고 물으면

답이 예상치 못한 것이 나오면

당황을 하게 되어

대화를 제대로 못하였다고 합니다.

3개월이라는 시간이 그렇게 흐르고

회사를 그만둘 때가 되었다고 합니다.

그때 그 독일인 대표님께서

"윌 미국에 가라"라고 말을 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저는 영어를 못해서 꿈도 꾸기도 싫다"

라고 대답을 하였다고 합니다.

그러자

"너는 미국에 가야 돼!"라고

 다시 말을 하였다고 합니다.

무슨 영문인지는 몰랐지만

더 큰 세상을 보라고 하며 건네준

미국행 티켓을 받고

곧장 미국으로 갔다고 합니다.

거기서 처음 일한 곳은 후룸라이드

(나무보트를 타고 높은 곳으로 간 다음 낙하 나는 놀이기구)를 

조작하는 일이었다고 합니다.

처음 갔을 때 할 수 있는 일의

옵션이 2가지였다고 합니다.

하나는 청소였고 하나는 놀이기구 조작이었는데

동양인이 서양인이 타는 놀이공원에

청소하는 모습을 보여주기 싫어

영어를 못하였지만

놀이기구 조작을 하고 싶다고 하였고

그 일을 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것이 큰 화근이었다고 합니다.

어느 날 후룸라이드

 꼭대기에서 일을 하고 있는데

밑에서 전화가 왔다고 합니다.

"There is handicap on the boat"

이 말을 듣고

cap(모자)를 얘기하는 줄 알고

"which color? blue or gray?"라고

대답하였다고 합니다.

그리고 뭐라 뭐라 하더니 전화를 끊었다고 합니다.

무슨 일이 생겼을까?

4명이 후룸라이드를 탔는데

한 사람이 과체중자였던 것입니다.

미국에서는 과체중자를 handicap이라

부르며 장애인으로 분류한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말을 못 알아듣고

그 사람이 탄 차가 출발하였고

결국 앞 차와 충돌을 하였다고 합니다.

그때 미국의 안전시스템이 얼마나

철저한지 알았다고 합니다.

그 사고가 터지자마자 안전요원, 경찰이 들이닥치고

폴리스라인(노란색 선)을 치며

사람들을 대피시키고 자신도 나가라고 했다고 합니다.

그때 당시 집도 차도 없어

두 시간을 정처 없이 걸어갔다고 합니다.

'아 온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추방당하는구나'라고

낙심을 하고 있었는데

그날 저녁 흑인 매니저가 와서

이런 얘기를 하였다고 합니다.

"윌, 미국에 왜 왔니?"

답변을 못했다고 합니다.

그러자

"내가 너에게 기회를 줄게"

"내일부터 다시 나와라"라고 하였다고 합니다.

그 매니저의 부모님은 멕시코에서

국경선을 불법으로 넘은

이민자였고 그녀는 그 사람들의

딸이었던 것이었습니다.

본인의 부모님이 영어를 못해서

겪은 서러움을 알기에 

자신에게 기회를 줬다고 생각을 했다고 합니다.

이기혁 님은 단순히 알량하게 언어를

배우러 미국으로 왔지만

그들에게는 삶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한국에서 올 당시 들고 온 것이 2개가 있었는데

1개는 영문법 책이고 또 1개는

오래된 카세트 플레이어였다고 합니다.

그것을 가지고

아침 회의 때 사람들이 한 말을 모두 녹음을 하고

저녁에는 그것을 들으면서 다 외우며

모르는 부분을 물어보았다고 합니다.

그렇게 3개월이 지나니

조금이 영어가 들리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어느 힙합 노래의 가사에

'돈 없고 집 없는 외국인 노동자가 

왜 독하고 열심인지'라는

 가사가 있다고 합니다.

자신은 이 가사를 들을 때마다

자신이 겪었던 일들을 생각한다고 합니다.

그다음 일자리는 초등학교 운동장 2개만 한

주차장을 청소하는 일이었다고 합니다.

담배를 줍고 화단 청소를 약 3시간 동안

하는 것이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자신은 더 빨리

그 일을 끝냈다고 합니다.

한 날은 매니저가 왔는데

  자신이 그때 현장에 없어서

"윌, 너 어딨었어?"라고 물었다고 합니다.

그러자

"청소 다 끝냈어요. 괜찮아요.

둘러봐도 돼요!."라고 대답을 하였고

실제로 확인을 해보니

주차장이 정말 깨끗했다고 합니다.

한 달 동안 정말 고민을 많이 했다고 합니다.

'아 만약에 내가 3시간짜리 일을

2시간 만에 끝내면 남은 시간에

영어 공부를 하고

동료들과 더 이야기할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한국의 분유통 같이

미국에서 땅콩 등의 먹을 것을 넣는

알루미늄 통을 주차장 구획 사이사이에 배치를

놓았다고 합니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손님들이 담배꽁초를

그 통에다가 버렸고

자신은 그냥 그것을 아침에 배치하고

일이 마치면 수거해가면 됐을 뿐이어서

시간을 단축했다고 합니다.

매니저는 놀라면서 이런 생각을 한 사람은

여태까지 없었다며 

자신은 천재로 보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결국

1층 화장실 청소를 맡기었다고 합니다.

평소라면 1년은 일을 해야 받을 수 있는

업무였다고 합니다.

여기서도 기지를 발휘해

청소를 정해진 시간보다 빨리 끝냈고

1층에서 2층까지

1,2층에서 빌딩 전체

그리고 다른 지역까지

결국 파트너 제안을 받았다고 합니다.

매니저가

'윌 네가 청소 잘하는 법을 

친구에게 가르쳐 줘'라고 제안했고

자기 앞에 히스패닉, 흑인들을 앉혀놓고

'글로벌 프레젠테이션'을 할 기회를

얻게 되었다고 합니다.

'여러분들이 2시간짜리 일을 1시간 만에 끝내면

페이가 2배로 높아진다'라고 설명하였고

 돈과 연결이 되어있었기 때문에

반응이 엄청 뜨거웠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때에도 자신은 'garage'

즉 차고에 붙어있는 작은 통 박스에

살았다고 합니다.

집이 없었고

이 집도 그 당시 같이 교회에 계신 분께서

알선하여 마련해 주셨고 행복했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 모든 생활

미국에서 얻었던 경험들을 가지고

그 이후에 호주, 미군부대도 가고

쿠바에서 벽화도 그리고

필리핀에서 집을 짓고

수영안전요원으로도 일을 했다고 합니다.

그런 뒤 한국에서 시간을

보내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한국 청년들에게 미국에 

나가게끔 조금이라도 도움을 주려고 

노력을 하였다고 합니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고 합니다.

'아 재미없다'

이미 시간에 익숙해져 있고

자신의 생활에 적응을 되어있는데

자기 자신에게 물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작년에 중국으로 갔다고 합니다.

중국에 도착하여 내리는 순간

자신이 20살 때 처음 미국에 왔던 것처럼

표현할 수 없는 미묘한 느낌을

느꼈다고 합니다

회사를 때려치우고

모든 경험과 돈을 들고

중국으로 왔다고 합니다.

거기서 아시아 최고 MBA에 들어가

장학금을 받게 되었고

거기서 만났고 친구들

한국에서 연락하던 우수한 친구들과

창업을 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자신은 3번의 죽을 고비를 넘기고

2번의 대수술을 할 만큼

약골이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현재는

철인 3종 경기를 하면서

운동을 하고 있다고 합니다.

인생이라는 것을 놓고 보았을 때

시작점이 있고 종착점이 있다고 친다면

정말 그 길이 스트레이트, 일직선일까?

아니라고 합니다.

앞으로도 가고 뒤로도 가고

위로도 가고 아래로도 간다고 합니다.

자신이 살면서 느꼈던 것이 그런 것이라고 합니다.

자신이 중국에 있을 때 만났던

중국 투자가가 이런 얘기를 했다고 합니다.

"윌, Do you know what's the YOLO mean?"

그 말이 무엇인지 몰라

"YOLO? Yellow?"라고 하였다고 합니다.

이것이 무슨 얘기냐 하면

'YOLO: You only live once'

라는 뜻이라고 합니다.

투자가가 말하기를 네가 하는

많은 프레젠테이션을 봤는데 모르겠고

너의 패션 즉 열정을 느낄 수가 있었다.

너는 이일에 모든 걸 던질 수 있을 것 같았고

자신감이 넘쳐 보였다고 말을 했다고 합니다.

자신이 이렇게 자신감이 있었던

 이유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혁기 님은

미국에서 청소 부였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30대 중반에

다 제쳐두고 중국으로 갔을 때도

자신감이 있었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젊었을 때

영어를 모르고 미국에 갔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자신이 모든 걸 제쳐두고 던지고

도전하는 모습을 미래의 후배들이나

친구들이 보면 

더 도전하지 않을까?

자신의 몸으로 보여주자!라는 마인드를

가지고 있었다고 합니다.

영어로 Let' go는 가자라는 의미입니다.

인생 어차피 한 번 가슴 뛰는 일에

온몸을 던져라! 를 한 단어로 한 것이

바로 YOLO라고 합니다.

그래서 이혁님은

 이렇게 강의를 마무리하셨습니다.

"Let's YOLO!"

 

정말 도전의 힘은 무섭고 아름다운 것 같습니다.

저도 현재 아늑하고

미지의 도전이 두려워

현실에 안주를 하고 있었는데

다시 한번 저를 돌이켜보는 강의였다고 생각합니다.

 

이상 포스팅을 마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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