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스 아카데미] 제가 겪은 하이퍼인플레이션을 말씀드리겠습니다

2022. 1. 31. 14:50부자에 대한 공부/성공한 부자들의 인사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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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가족은 루마니아에서 살았습니다.

태어나고 자랐죠.

제가 태어났을 때 루마니아는 공산주의 국가였습니다.

소련이 붕괴된 이후로 소련의 일부였던 위성 국가들이

하이퍼인플레이션 같은 재난을 겪었습니다.

루마니아도 그런 국가들 중 하나였죠.

공산주의가 실패한 후 1989년 이후로 많은 것들이 바뀌었습니다.

인플레이션이 점점 빨라지면서 하이퍼인플레션이 진행되었죠.

일정 기준을 넘어야 하이퍼인플레이션의 영역이 됩니다.

때로는 소비자 물가지수가 하이퍼인플레이션을 반영하지 않습니다.

자료를 찾아보면 하이퍼인플레이션이 오지 않았다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

일부 수치에 따르면 우리 일상의 인플레이션 수치는 분명히

하이퍼인플레이션 영역에 진입했었죠.

저는 가난한 가정에서 자랐습니다.

공산주의 아래에 살던 그냥 보통 가정이었죠.

저희 아버지는 공장 노동자, 기계공이었습니다.

저희 어머니도 마찬가지였고요.

우리는 큰 재정적인 배경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제 이야기를 공감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많은 일반 사람들이 이런 하이퍼인플레이션

시나리오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궁금해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저의 관점이 독특하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나라 전체가 인플레이션과 재난을 겪었습니다.

아마 제가 생각을 공유할 수 있을 겁니다.

왜냐하면 저는 어렸을 때부터 거시 경제를 배웠기 때문입니다.

저의 지식을 저와 아버지, 할머니의 경험들에 녹여낼 수 있습니다.

여러 세대를 거쳐서 우리는 여러 번의 하이퍼인플레이션을 겪었습니다.

그리고 하이퍼 인플레이션이 일어나는 데에는 특정한 패턴이 있죠.

많은 나라들이 다른 인플레이션율을 경험합니다.

자료에서 찾아볼 수 있는 인플레이션율이죠.

하지만 제가 이야기했던 것처럼 그것들은 그냥 숫자일 뿐입니다.

우리는 그런 숫자에 신경 쓰지 않아요.

우리가 신경 쓰는 것은 음식이나 에너지 같은 것들의 비용이죠.

빵 가격은 1 레이 정도였습니다.

루마니아 화폐 단위죠.

빵 가격은 1 레이 이거나 가끔은 심지어 1 레이의 절반이었습니다.

'레이'보다 낮은 단위는 '반'이었습니다.

빵을 구입하기 위한 50반은 1 레이의 절반이죠.

일반 사람들이 인플레이션을 경험하기 시작할 때는

음식의 인플레이션이었습니다.

음식 가격이죠.

좋은 싫든, 음식 가격이 당신에게 영향을 주기 때문입니다.

특히 가난할수록이요.

하지만 사실 인플레이션은 음식에서 시작되지 않습니다.

음식은 인플레이션의 마지막에 나타나죠.

그전에 다른 많은 자산들에 인플레이션이 일어납니다.

일반적으로 천연자원에서 인플레이션이 먼저 발생하죠.

그리고 천연자원을 사용해 만들어지는 도구나 장비에

인플레이션이 일어납니다.

결국에는 집 값이 높아지게 됩니다.

집을 짓는 데는 원자재가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집 값이 높아진 후에는 임대료도 높아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임대료 인플레이션은 집 값의 인플레이션보다는 낮아요.

그리고 마지막으로 음식에 나타나죠.

그래서 우리가 처음으로 인플레이션을 맞이할 때는

음식 가격의 상승이었죠.

그리고 당신은 연봉에서 차지하는 음식 가격의 비중이

점점 높아지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결국에는 음식 비용이 연봉의 반이 되거나 심지어 반을 넘기도 합니다.

이 시점에서는 정부가 개입을 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내전이 일어나거나 더 심각한 일이 벌어지기 때문이죠.

그래서 이 시점에서 우리는 음식 쿠폰이나 보조금을 받습니다.

어머니와 가족과 같이 줄을 섰던 것이 기억이 나네요.

이런 식으로 빵이나 음식을 구하기 위해 줄을 섰죠.

가족 수에 따라서 음식을 나누어주었습니다.

이런 것이 우리에게 자연스러운 것이었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

공산주의에서는 일어나는 일들이 있었죠.

이런 일들이 우리의 상상밖에 있던 것은 아닙니다.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다고 상상할 수는 있습니다.

왜냐하면 루마니아에서 하이퍼인플레이션이 오기 전에

우리는 10년 동안 엄격한 사회를 겪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어려움이 조금 있었죠.

하지만 하이퍼인플레이션은 일반 대중에게 완전히

다른 차원의 어려움을 가져다주었습니다.

현재는 이상하게 느껴지는 것도 하이퍼인플레이션이 온다면

빠른 속도로 정상적으로 느껴질 수 있습니다.

빵 가격이 1 레이나 1레이 미만이었는데 10,000 레이가 되었습니다.

만약 당신이 10,000 레이를 은행에 보관하고 있었다면

물론 결국에는 은행이 문을 닫고 당신이 돈을 인출할 수 없는 상황이 오죠.

은행이 문을 열고 당신이 조금씩 인출할 수 있을 때에는

10,000 레이로 빵 하나를 살 수 있을 겁니다.

7년이 지난 후에요.

인플레이션이 온 것이죠.

가족 중에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돈을 물려받은 분들이

있었는데 대출 없이 현금으로 집 3채를 살 수 있었습니다.

공산주의 아래에 은행이 하나밖에 없었는데 거기에 돈이 있었습니다.

CEC라는 은행이 있었죠.

나라가 운영하는 은행계좌였는데 거기에서 계좌를 가질 수 있었습니다.

돈 일부를 반드시 저축 계좌에 예치시켰어야 했습니다.

규제가 심했습니다.

루마니아 경제를 위해서는 안전해 보였지만 하이퍼인플레이션이

온 후엔 그 어떤 것도 더 이상 안전하지 않죠.

그 돈을 은행에서 인출했을 때는 그 돈으로 오직 흑백텔레비전을 살 수 있었습니다.

그래도 행복했습니다.

밀수한 미국 영화를 볼 친척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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