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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보832] 대한민국 부촌의 역사, 현 시점 초하이엔드 넘사벽 부촌은 어디

NASH INVESTMENT 2024. 2. 7. 1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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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티어 부촌은? 한남동, 이태원동.

이태원동 주택가는 넘사벽임.

(차로 치면 하이퍼카)

한남동, 이태원동, 반포, 압구정, 청담 라인.

성수동 ASF, 갤러리아 포레 그리고 시그니엘까지가 1 티어.

 

방배, 평창, 성북동은?

(이미 빠졌다고 생각함)

 

2 티어는? 잠원동, 개포, 이촌, 신용산 주복라인, 송파, 여의도, 마포, 흑석.

(잠원동은 반포의 하위호환, 교통 등)

(개포가 신축 빵이지만 도곡, 대치를 뛰어넘을 수 없음)

(이촌은 재개발의 향방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지상철도 있고 첼리투스뿐이지만

초대형이 없고 주변 인프라가 부족함)

(신용산역도 주거지로서의 한계)

 

원래는 부촌 이동의 역사를 알려면 당시 정치사, 사회사,

문화사, 경제사까지 알아야 함.

 

1950~60년대 중심지는 4대 문 안이었음.

북촌하고 서촌은 경복궁에서 임금이 업무를 보던 곳임.

(지금으로 치면 청와대, 고위 관료들이 출퇴근이 편했어야 했음)

 

일제강점기부터 4대 문을 중심으로 하는 종로, 중구, 명동, 종각역.

(광복 이후에도 중심지를 유지)

지금은 4대 문이 상업지역이 많이 들어서서 주거지로서 퇴색됨.

 

1945년 광복, 1950년 전쟁, 1953년 휴전.

(강남 지역은 논밭이었음)

 

가장 먼저 개발된 곳이 종로와 중구를 제외하고 '평창동'임.

(1968년 1.21. 사태 무장공비 소탕 작전)

박정희 대통령 때 무장공비들이 평창동의 뒷산,

북악산을 따라서 청와대로 침투를 하려고 했음.

(한적한 시골이었는데 길도 내고 군부대도 드나들 수 있도록 개발)

(상승기 때 강남보다 못 올랐음, 북악산 끼고 한적하게 살기 좋은 곳)

 

평창동과 성북동이 서울의 양대 부촌이었는데 왜 '성북동'이 개발이 되었나?

(한국전쟁 이전에도 이후에도 4대 문이 중심이었음)

 

오늘날 성수동 연무장길, 강남 테헤란로, 신사역 등이 모여있다고 생각하면 됨.

청와대에서 평창동보다 성북동이 가까움.

정치인들이 많이 살았음.

모든 대기업 본사들이 종로에 있어서 출퇴근하기도 편했음.

 

평창동, 성북동의 특징은 산기슭에 사는 것임.

(지금은 한강)

보안, 청와대 접근성, 프라이버시(대중교통 X)

 

서울이 1963년 기점으로 강남이 발전하면서 2배가 됨.

(영등포 동쪽 = 영동 = 강남)

1967년 한남대교, 제3한강교(경북고속도로와 바로 연결) 건설.

(엄청난 분기점)

 

1970년대 유신체제.

남산에 남영동이 있었음.

그것과 관련된 정부 부서들이 남산 근처에 있었음.

미군 장교들과 미군도 용산에 자리 잡으면서 관련 관공서도 근처에 있었음.

용산구는 서울의 중심에 딱 있음.

 

유엔 빌리지 = 일본 장교들을 위한 자리.

한국전쟁 터지고 쑥대밭이 되어버리고 외국인 기술자, 외교관들을 위한 장소로 마련.

 

오늘날 재벌들이 많이 사는 곳이 이태원동

(1990년대 이후, 500억대, 1,000억대도 있음)

(평창, 성북동은 과거 1970년대까지)

 

강남을 개발해서 정부에서 땅장사를 함.

(땅값을 10~20배 띄워주고 30~40% 기부채납을 받음)

그 돈을 가지고 강남 개발을 계속 투자.

(+경부고속도로 건설)

 

양재동이 평당 200원에서 1년 만에 3,000원이 되어버림.

(졸부가 많이 탄생)

 

강북 억제책(유흥 금지)을 써서 강남 개발에 돈이 들어가게 해 버림.

(+ 명문고 이전)

 

2호선은 강남 개발을 통해서 강북, 강남, 강서를 이어주는 호선임.

3호선은 1980년대 서부관 확장 호선임.

서울이 개발해 나가면서 이어주는 지하철들이 4,5,6...

 

1960~70년대 인구가 증가하면서 도시화가 심해짐.

(대규모 아파트를 짓기 시작)

 

서울은 1970년대에 계획하고 다 만들어짐.

 

중동 건설붐, 중화학 공업 = 한국 경제 개발의 시작.

(1970년대)

서울의 아파트를 사고 중산층이 생겨나기 시작.

 

1979년 압구정 현대아파트 특혜 분양 사건.

(당시 분양 1,000만 원)

 

1980년대 서초구 법조타운이 형성되면서 서래마을이 형성.

(+방배동 부촌)

 

1970~1980년대 대규모 택지개발을 했는데 청담은 개발하지 않음.

(중요한 위치가 아니라서, 종로와 용산에서 멀었음)

 

1980년대 3저 호황(저유가, 저달러, 저금리)으로 경제가 더 발전.

(중산층, 중상층, 부자들이 생겨남)

아파트 가격이 계속 오르니까 무주택자들의 불만이 생김.

 

그래서 나오는 것이 노태우 정권의 200만 호 공약

(1기 신도시의 탄생)

분당 33평 분양가가 5~6천만 원 정도였음.

(은마아파트 7천만 원, 차이가 없었음, 지금은 3배)

 

1997년 가격 순위.

반포 미도와 강촌우방 일산이랑 가격이 똑같았음.

(지금은 자산 가격의 격차가 어마어마함)

 

서울아파트가 오르다가 200만 호 공약으로 회복을 못하고

외환위기를 맞아서 다시 죽다가 오르다가 규제를 맞고 내리다가

금융위기, 그리고 다시 오르고 있음(사이클)

 

지금까지는 대규모 택지개발을 통했는데 2002년 타워팰리스,

2004년 삼성아이파크로 부자들이 이동함.

(질 좋은 아파트 = 고급화)

 

그다음 반포자이, 반포 프레스티지(2008년 재건축).

 

타워 팰리스가 당시에 미분양이어서 삼성 임직원에게 강매함.

그런데 불과 몇 년 만에 2~3배가 오름.

(강남 불패가 시작)

 

산기슭(성북동, 평창동)에 살던 부자들이 2000년대 이후 한강으로 옴.

산자락(방배동, 서래마을) 사람들과 역전됨.

 

'커뮤니티'와 '단지'(조경 등).

(+한강뷰)

 

새로운 부촌이 성수동.

(한강 + 서울숲)

 

작은 시행사들이 초고하이엔드로 지어서

이득을 보는 곳이 청담동(소규모 개발)

ex) PH19(부지가 작아서 게이트는 없음)

 

고급화가 가장 성공한 게이트형 단지는 나인원, 더 힐임.

(하드웨어 최고급화 + 대형평수 + 남산 + 주택형 저층아파트)

 

새로운 부촌 '시그니엘'.

2010년대 이후의 키워드가 '고급화'

(초고급화)

 

초고급화의 특징은? 조합원이 없음.

(경제적 이익 때문에 작은 평수로 쪼개서 팔아야 함)

 

땅을 사서 시행사가 부자층을 타깃으로 해야 함.

 

주상복합이 타워팰리스 때는 맞환기도 안되었는데

2기로 넘어오면서 진화를 많이 함.

(판상형 아파트의 장점을 흡수)

 

판교는 일자리와 주거지가 다 되어있는 유일한 신도시.

남서울 CC을 운영하는 허완구 승산그룹 회장이

VIP 유치를 위해 보전녹지에 개발허가를 받아서 한 필지로 나눠줌.

(그 이후로 초고급 주택들이 들어옴)

 

앞으로는 한강을 주변으로 부촌이 형성될 것임.

(뷰도 뷰지만 교통의 요지임)

고급화되면서 또 부자들이 몰리는 '선순환'

(정비사업을 통해 새로운 부촌은 압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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